남이섬에 가려거든, 먼저 '느림'이란 말을 가슴에 새길 일이다. 가서, 뒷짐 지고 천천히 거닐다 올 일이다. 남이섬에 가거든, 하룻밤쯤 묵고올일이다. 해 지고 난 뒤, 잎들을 떠나보낸 나무 사이로 고요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일이다.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듯 고요한 북한강, 그새벽 물안개를 보고올 일이다. 그래야 남이섬에 갔다왔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나무들의 잔치
입동 지나고 찬비까지 훑고 지나갔으니, 섬은 이제 우울한 모노톤일까? 아니다. 남이섬의 11월은 색의 향연이 장관이다. 초록의 잣나무와 갈색메타세콰이어, 붉디 붉은 단풍나무가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은행나무는 섬의 갈피마다 노란 융단을 깔아놓았다. 자작나무, 튤립나무도멋진 자태로 곳곳에서 관광객을 맞는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더 유명해진 메타세콰이어 길이 최고 인기다.
▶열려라 보물창고
남이섬은 추억의 보물창고다. 먼저 미니열차가 손 흔들어 반겨준다. 기적을 울리며 칙칙폭폭 지나가는, 장난감 같은 열차가 앙증맞다. 1950년대이후 생활문화, 풍경을 재현해 놓은 '그때 그 시절' 전시관도 볼거리다. 전시관 앞에서 '설탕뽑기'를 하며 신기해 하는 어린이의 모습도 정겹고,구식 우체통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광경도 미소를 머금게 한다. '옛날 도시락'도 명물이다. 학창시절 연탄난로 위에 데워먹던 그 도시락의 추억을그대로 맛볼 수 있다.
▶동물은 내 친구
남이섬에서는 타조와 달리기 시합을 할 수 있다. 어른 키보다 훨씬 큰 타조들이 섬 구석구석을 제집 앞마당처럼 산책한다. 마음 약한 이들은불쑥, 소리없이 다가오는 타조를 보고 비명을 지르기 일쑤다. 부리로 사람의 모자를 모이마냥 콕콕 쪼는 모습이 신기하다. 어린이들은 토끼와 친구가 된다.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에 놀라 주위를 살펴보면 토끼를 볼 수 있다. 토끼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놀아보자.
< 남이섬=임정식 기자 dada@>
가는 길
버스(상봉터미널)나 기차(청량리역)를 타고 가평역에서 내린다. 가평역에서 1시간마다 남이섬 선착장행 버스가 운행된다. 승용차로는 가평읍 오거리에서우회전한 후, 2.5㎞를 달린다. 주차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5분이면 섬에 닿는다. 남이섬행 첫배는 오전 7시 30분, 남이섬 출발 막배는 오후9시 30분. 주차료 4000원, 도선료는 5000원. 차는 갖고 들어갈 수 없다.
묵는 곳
섬에는 호텔, 별장, 방갈로 등의 숙박시설(www.namisum.com)이있다. 호텔은 5만5000원, 콘도형 별장은 14만~23만원, 민박형 산장이나 방갈로는 2만~4만5000원. 평일엔 20% 할인된다. 섬 건너편모텔의 하루 숙박료는 5만~6만원선. 이밖에 식당, 슈퍼 등의 편의시설도 있다. (031)582-5118
낙엽이 추억처럼 그리움처럼 쌓인다. 소녀의 책갈피에 곱게 꽂힌 은행잎은 먼 훗날의 소중한 추억이고,노부부 발끝에서 사각거리는 낙엽은 지난날에 대한 갈빛 그리움이다. 짧아진 가을햇살에 고목이 긴 그림자를 벗한다.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늙어버린 그림자가 사색에 빠져들고,연가처럼 흐르는 노란 은행잎은 빛바랜 연애편지처럼 정겹다.
“가장 그리운 이에게 언제 배달될 지 모르는 편지를 쓴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누군가 생가나는 이가 있을 때 호젓한 강가에 앉아 두 강이 합쳐지는 강끝을 바라보면서요….”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을 마친 날 윤석호 감독이 남이섬에 빨간 우체통을 세워주며 했다는 말이다.
만추의 남이섬은 두툼한 철학서이자 한 편의 서정시다.
남이섬행 첫배를 타는 사람은 언제나처럼 무거운 가방을 둘러 맨 사진작가와 젊은 연인들 몇명,그리고 남이섬에서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노부부 한 두 쌍이 전부다. 추억과 그리움을 찾아 나선 이들이 거울같은 수면에서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물안개를 헤치며 북한강을 미끄러진다.
반달 모양의 남이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400여m의 잣나무 길은 아직도 여름을 꿈꾸고 있다. 녹슨 꼬마열차 궤도와 함께 달리는 이 길을 따라 늘푸른 잣나무가 개선장군을 반기듯 일직선으로 도열해 있다. 상큼한 피톤치드가 은은한 잣나무 길 끝에서 저물어가는 가을을 만난다.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길은 잣나무 길과 연결되는 십자로의 오른쪽에 있다. ‘겨울연가 길’로 더 잘 알려진 나무터널 끝에선 뽀얀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환상적인 가을풍경에 취한 연인들은 스스로 가을풍경이 된다.
메타세콰이어 길 중간 쯤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은행나무와 잣나무길엔 ‘연인들의 산책로’란 이름이 붙었다. 1980년대 중반 젊은이들의 눈물샘을 꽤나 자극했던 영화 ‘겨울나그네’가 이곳을 무대로 촬영됐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낙엽비를 맞으며 커플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연인들과 홀로 추억을 줍는 여심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남이섬엔 유난히 길이 많다. 길은 길과 연이어지는데다 저마다 개성이 듬뿍 묻어난다.
그 중에서도 강변을 따라 남이섬을 한바퀴 도는 강변산책로만큼 아름답고 개성있는 길도 드물다. 메타세콰이어길이 끝나는 남이섬 서단에서 굴참나무 숲길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가을을 찾아 나선다. 손바닥 크기의 굴참나무 낙엽이 카펫처럼 깔려 있는 오솔길은 노부부에게 어울린다. 옷깃을 여며주며 낙엽길을 걷는 노부부의 다정한 뒷모습에서 가슴뭉클한 정을 엿본다.
섬 북단을 돌아 길게 이어지는 동쪽 강변산책로는 여인의 속살만큼 하얀 백자작나무와 튤립나무숲,그리고 삼각형과 사각형의 형형색색 방갈로가 알프스처럼 이국적이다. 이 길은 나목의 마지막 잎새가 그리움이 되어 빈 가슴을 적시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강 건너 울긋불긋한 산이 수면에 제모습을 비추고 물오리 서너마리가 평화롭게 자맥질을 하는 강변 억새숲을 헤치면 드넓은 북한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섬 남단에 이른다. 물안개 위로 해맑은 가을햇살이 쏟아지고 연인을 기다리는 거친 나무벤치 하나가 쓸쓸하다 못해 외롭다.
이곳에서 만나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오솔길은 남이섬에서 가장 운치있는 길. 토끼와 청설모 서너마리가 빨간 플라스틱 벤치에 앉아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의 대화를 엿듣다가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숲속으로 숨는다. 단풍나무 사이로 투명한 햇살이 빛의 잔치를 펼치고 북한강이 비늘처럼 반짝이는 오후엔 방갈로와 별장을 품고 있는 강변길을 거니는 연인들로 북적거린다.
어린시절 교실 난로에서 데워먹던 ‘추억의 도시락’을 파는 드라마카페 ‘연가’와 인형조각가 임근택의 시간전시관 ‘그때 그시절’은 50∼70년대의 추억이 물씬 묻어나는 곳. 개구쟁이들의 교실풍경과 팝송이 흐르는 약속다방,동그란 종이딱지를 파는 구멍가게 등엔 임씨가 10여년동안 수집한 소품과 직접 만든 실물 크기의 인형이 전시돼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로 되돌아 온 듯 콧날이 시큰해진다.
길은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안개와 낙엽이 추억처럼 덕지덕지 쌓여가는 만추의 남이섬. 추억과 그리움을 찾아 오늘도 사람들은 남이섬행 첫배를 탄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어떻게 가나=6번국도를 타고 팔당댐을 지나 양수대교에서 45번 국도로 갈아탄다. 샛터에서 경춘선과 나란히 달리는 46번 국도를 타고 청평을 지나 가평오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남이섬 안내푯말이 나온다. 북한강의 정취를 더 맛보려면 청평에서 363번 지방도를 타고 가평까지 간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큰 요즘은 이른 아침 북한강을 따라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 오른다. 청량리역에서 경춘선 기차를 타고 가평역에서 내리면 택시나 시내버스를 탄다. 동서울터미널이나 상봉터미널에서 춘천행 시외버스를 타고 가평에서 내려도 된다. 가평 남이섬선착장에서 남이섬까지는 배로 5분. 남이섬 입장료는 왕복배삯을 포함해 어른 5000원,어린이 2500원. 주차료는 소형 4000원. 첫배는 오전 7시30분에 들어가고 마지막배는 오후 9시30분에 나온다. 낮엔 수시로 운항. 하나강산(02-2253-2500)은 남이섬과 서울종합촬영소를 둘러보는 당일여행 상품을 내놨다. 9일 서울역 앞에서 출발. 어른 3만6000원,어린이 3만2000원.
◇가볼만한 곳=남이섬 오가는 길에 위치한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다산 정약용 유적지’엔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과 묘,다산기념관,다산문화관 등이 있다. 유적지 입구의 조형물엔 다산의 저서에서 가려뽑은 명언들이 새겨져 있어 천천히 음미하며 걷기에도 좋다. 홍릉과 유릉 광릉숲 서울종합촬영소 등도 가깝다. 남이섬에선 시간여행 전시관인 ‘그때 그 시절’을 꼭 둘러보자.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타임캡슐 방명록을 만들어 보관하면 먼 훗날 다시 남이섬을 찾았을 때 지난날의 추억을 반추해 볼 수 있다. 전시관 입장료는 어른 2000원,어린이 1500원.
◇먹을 거리•숙박=남이섬에는 호텔과 별장,방갈로 등이 있다. 호텔의 경우 주말에는 방을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붐비므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평일 4만5000원,주말 5만5000원. ‘드라마카페’의 옛날 도시락(4000원)은 남이섬의 명물. 두툼한 닭갈비를 석쇠 위에 얹어 숯불에 구워 먹는‘섬향기’의 닭숯불갈비도 맛있다. 이밖에도 남이섬 선착장과 북한강 주변에는 음식점과 모텔들이 많다. (남이섬 관리사무소 031-582-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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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3년 11월6일자 남이섬 기사
늦가을과 추억 그 사이엔 늘 춘천의 섬들이 떠있다
[한겨레] '짧은 뱃길 뒤의 긴 서정' 중도•남이섬
강나루에서 배를 탄다. 수심 깊은 늦가을 북한강 줄기, 나뭇잎처럼 뜬 섬으로 흘러드는 짧은 뱃길. 뱃길 뒤엔 하염없는 낙엽길이 기다린다. 가을 나무들 정갈하게 몸을 비워 숲길마다 추억들이 두툼하다. 연인들은 그 숲에 들어 자작나무 허리에 자전거를 오래 기대놓고, 바스락거린다. 숲길이 자전거 바퀴를 다시 굴리는 때는 황금빛 강물이 갈대숲을 적실 무렵. 또 한잎 추억이 무르익어 늦가을 섬이 훈훈하다.
남이섬 튤립나무 등 산책로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장소 고슴도치섬 국제마임축제 유명
고슴도치섬•붕어섬•상중도•하중도•남이섬 …. 춘천은 육지 속의 섬나라다. 북한강 줄기에 잇따라 들어선 댐이 물을 막아 강 가운데 여러 섬이 만들어졌다. 낙엽 밟으며 걷기 좋은 춘천의 섬으로 떠난다.
가평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5분 달리면 울창한 고목 숲과 낙엽길이 아름다운 남이섬에 닿는다. 가평에서 배를 타지만 섬 자체는 춘천시에 속한다. 둘레 6㎞, 14만평 넓이로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섬을 이뤘다. 수도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라면 경춘선 기찻길과 함께 이곳에도 추억 한 자락씩 묻어둔 이가 적지 않으리라. 잣나무•은행나무•단풍나무•튤립나무길•메타세쿼이아나무 숲길 등 거닐기 좋은 산책로가 있어 연인•가족 나들이객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영화•드라마가 잇따라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요즘 들어 더욱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섬이다. 70m 가량 이어진 은행나무길은 영화 〈겨울나그네〉를, 하늘 높이 치솟은 메타세쿼이아길은 드라마 〈겨울 연가〉를 촬영한 장소다. 지금 은행나무 잎은 다 떨어져 쌓였고, 단풍나무 등은 아직 붉은 잎들을 달고 서 있다. 추억을 남길 만한 숲길이 곳곳에 있지만, 주말엔 인파가 몰려 번잡한 게 흠이다. 30일까지 섬 안에 있는 안데르센홀에서는 남이섬의 사계절을 찍은 사진전시회가 열린다. 조선 세종 때 여진족을 물리쳤던 남이 장군의 묘가 있다 하여 남이섬으로 불리고 있으나, 실제 남이 장군의 묘는 경기 화성에 있다. 주차료 4000원, 왕복 뱃삯 5000원. 남이섬 관리사무소 (031)582-5118.
중략...
● 가는길 서울 청량리역에서 춘천역까지 무궁화호(1시간35분 걸림) 열차가 하루 9차례, 통일호(1시간50분)가 6차례 운행된다. 남이섬은 가평역에서 내려 남이섬행 시내버스(하루 9차례)를 타거나 택시(4000원 가량)를 이용한다. 서울 상봉터미널과 구의동 동서울터미널에서 춘천행 시외버스가 15분 간격으로 있다. 승용차로는 서울에서 46번 경춘국도를 타고 청평•가평을 거쳐 춘천으로 간다. 남이섬 가는 선착장은 가평읍내에서 우회전해 10분 거리에 있다.
중략...
● 묵을곳 남이섬에는 호텔을 비롯해 방갈로•별장 등 숙박시설이 많이 있다. 중도나 고슴도치섬에도 방갈로가 있다. 모두 각 관리사무소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은행나무잎은 수북이 쌓였고 ‘겨울연가’의 주인공 준상(배용준)과 유진(최지우)이 거닌 메타세쿼이아숲길은 낙엽이 지기 시작했다. 두 주인공이 2인용 자전거를 탄 섬 북쪽의 자작나무길과 첫 키스를 나눈 북쪽 벤치도 반드시 들를 것. ‘그때 그 시절’이라는 상설 전시장도 눈에 띈다. 지하에는 옛날 학교와 동네 모습이 재현돼 있고 옛 교과서,영화포스터 등도 감상할수 있다. 아폴로 똘똘이 등 어릴 적 불량식품도 구입할 수 있다.
▲버스(상봉터미널)나 기차(청량리)를 이용해 가평에서 하차. 가평읍에서 1시간 단위로 남이섬까지 시외버스가 운행된다. 승용차로는 청평을 지나 가평읍 초입에서 우회전한다. 남이섬으로 향하는 첫 배는 오전 7시30분. 돌아오는 마지막 배는 오후 9시30분. 주차비는 4,000원. 입장료는 도선료 포함 5,000원이다. 섬 안에서 자전거를 빌려 분위기를 내는 것도 강력 추천. 1시간 대여료는 5,000원.
▲섬 안에는 호텔 별장 방갈로 등의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다. 호텔은 5만5,000원. 방갈로는 4만5,000원. 콘도형 별장은 5∼12인용이 14만∼23만원. 주중에는 2만∼3만원의 할인혜택이 주어진다. 섬 밖 인근 모텔의 하루 숙박료는 5만∼6만원 선이다. 남이섬 관리사무소(namisum.com)를 통해 행사와 숙소를 확인할 수 있다.
회상의 배를 타고 남이섬을 거슬러 오른다. 연인들의 낭만이 깃든 남이섬. 20년 전 강변가요제에서 이선희가 ‘J에게’로 대상을 받았고 80년대 영화 ‘겨울나그네’의 배경이 된 곳. 지난해 드라마 ‘겨울연가’로 화제가 된 섬은 하루 수백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드나드는 명소로 변했다.
남이섬의 11월은 추억의 낙엽을 즐기려는 인파로 붐빈다. 하지만 회상의 꼭짓점에서 그 섬의 어제와 오늘을 간직한 뱃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35년간 섬을 오가는 배를 터전으로 살아온 장갑수 선장(62). 반평 남짓한 선장실에서 묵묵히 남이섬과 긴 세월을 함께했다.
장선장의 추억 속에서 섬은 회색빛으로 변한다. 장선장이 처음 섬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68년.
“결혼하고 군대까지 막 제대했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었어. 마침 남이섬을 관광지로 개발할 때여서 농사짓다 말고 선장 조수로 취직했지.”
농사짓고 소 키우던 남이섬은 66년 골프장 허가를 받아 개발됐지만 골프장은 망하고 1년 만에 유원지로 모습을 바꿨다.
황량한 남이섬을 오가는 배도 딱 한 척뿐이었다. 인천 앞바다에서 사들인 ‘둔대호’만이 손님들을 실어 날랐다. “인부들이며 농사짓는 소도 다 그 배로 날랐어. 또 배가 고장나면 고칠 때까지 손님들은 무조건 기다려야 했지.” 최근 섬 입장료는 5,000원. 그 당시만 해도 70원이면 섬을 왕복할 수 있었다.
장선장의 기억 속에서 70∼80년대 섬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긋한 중년이었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선착장에서 잔디밭까지 리어카로 짐을 나르는 데 500원이었다. 그 리어카가 최근에는 젊은 연인들을 6,000원에 실어 나르는 추억의 운송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도선장도 옮겨졌고 남이섬을 오가는 선장들은 5명으로 늘어났다. 남이섬은 모터보트를 타고도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섬이 됐다. 꼬마들을 놀리던 짓궂은 원숭이도 사라졌고 함께 일한 동료들은 10여년 전 모두 남이섬을 떠났다.
장선장이 섬을 오가는 횟수는 주말에는 하루 30회,주중에는 18회 정도다. 편도 800m의 5분거리를 오간 횟수가 35년 동안 수십만번이 넘는다. 그 숱한 세월 동안 창 너머로 말을 걸어오는 손님들은 거의 없었다. “신선놀음을 즐기는 것 같아 부럽다”는 말을 툭 던지고 지나칠 뿐이었다.
“섬을 오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 풀냄새도 섬냄새도 세월이 지나면서 변하데. 그러니까 배운전하는 게 지겹지는 않지.”
그는 섬을 기반으로 살아가면서 3남매를 키워냈고 아들은 남이섬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선장 조수로 첫발을 디딘 20대 청년이 이제는 손자들을 태우고 남이섬을 직접 구경시켜주기도 한다.
앞머리가 벗겨진 그의 얼굴처럼 하루 20∼30명만이 드나들던 섬은 수천명이 찾는 관광지로 변했다. 수많은 드라마와 CF가 이곳에서 촬영돼 친근감을 더했다. 이제 배에도 최신 레이더가 설치돼 야간에도 다닌다.
최근 남이섬에서는 60∼70년대 생활상을 담은 ‘그때 그 시절’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약속다방에서 차 한잔 마시고 뽑기 쫀드기도 먹을 수 있다.
“사람들이 봄•가을철에 많이 찾는데 남이섬은 역시 설경이 가장 아름답지. 점심? 바쁠 때는 배 위에서 김밥으로 대충 때우는 거지 뭐.”
어느덧 익숙해진 남이섬의 그때 그 시절이 궁금해진다면. 무심히 키를 잡고 있는 장선장에게 말을 건네 볼 일이다.
◇`살아있는 화석` 이라 불리는 메타세콰이어가 수직으로 뻗은 산책길. 남이섬에는 가을 풍경을 담기 좋은 숲길이 곳곳에 가꿔져 있다.
하늘에서 붉고 노란 담채화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 여기저기서 단풍이 울긋불긋 터져오르는 11월의 한반도다. 절정의 가을 풍경을 꼬옥 끌어안고 놓지 않는 남이섬. 북한강이 주위를 감싸 흐르는 남이섬의 주소는 강원도 춘천시로 시작하지만 섬으로 들어가기 위한 나루터는 경기도 가평군에 적을 두고 있다.
사뿐히 즈려 밟는 섬 속의 가을길은 촉감부터 다르다. 섬 주위는 물론 산책로에 떨어져 있는 낙엽을 일부러 치우지 않기 때문. 둘레 6㎞, 넓이 13만 9000여 평에 달하는 섬 곳곳을 거닐다보면 토끼•사슴•청설모 등 야생 동물들이 뛰노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울타리가 쳐진 야외 동물원에서 조금도 예상치 못한 타조를 발견하면 “으악~”하는 비명이 절로 터져나온다. 나루터 입구에서 미니 열차를 타고 섬을 가로질러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
남이섬의 자랑은 곳곳에 펼쳐진 아름드리나무 숲길이다. 잣나무•자작나무•은행나무 등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으며 TV 드라마와 영화촬영 장소로 인기가 많은 메타세콰이어나무가 수직으로 솟아 있는 산책길도 장관이다. 강변길과 쉼터 여기저기에 의자가 놓여 있어 언제든 쉬어 가기 좋다. 섬에서 하룻밤을 묵을 경우 가을에서 초겨울에 걸쳐 일어나는 물안개 덮인 새벽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남이섬’이란 이름이 붙게 된 배경은 조선 초기의 용맹한 장군 남이의 묘가 이곳에 있다고 민간에서 전해져온 때문이다. 섬 입구에 전설의 허묘(虛墓)가 단장돼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서울 도심에서 남이섬까지 승용차로 1시간 남짓 걸리며 기차를 이용할 경우 경춘선 가평역에서 내린 뒤 시내버스를 타고 남이섬 입구까지 갈 수 있다. 왕복 뱃삯을 포함한 섬 입장료는 어른 5000원, 어린이 2500원(문의 ☎031-582-5118, 인터넷 www.namisum.com).
[남이섬] 그밖의 볼거리들
남이섬 관리사무소 근처에 1950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우리 나라 생활•문화상을 200여 평의 공간에 재현해둔 ‘그 때 그 시절’ 전시관도 볼거리다. 교실 한복판에 난로를 피워 놓고 선생님과 수업하는 장면이 인형으로 꾸며져 있다. 구멍가게에서는 새총•딱지•화약 등 초등생을 자녀로 두고 있는 학부모가 어렸을 적 학교 앞 문방구에서 흔히 봤을 법한 장난감을 팔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보급용 컴퓨터와 추억의 놀잇감인 종이 인형, 설탕 과자 ‘달고나’ 등 어린이들이 엄마•아빠 세대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장소다.
이밖에 한지 만들기, 짚 공예, 손수건 염색, 도자기 꾸미기 등 온가족이 참여해서 전통 문화를 배워볼 수 있는 체험 학습장도 마련돼 있다. 남이섬 안에서 공방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직접 지도하고 있어 단체별로 참가하기 좋다. 프로그램별 2000~5000원(문의 ☎031-582-5855).
은행나뭇잎이 비처럼 하늘하늘 떨어지면, 섬은 노란빛 추억으로 젖는다. 노란 낙엽 카페트를 연인과 함께 걷는 길, 남이섬은 그 자체로 가을날의 동화이자, 가슴떨리는 연인의 섬이다. 북한강 청평호에 떠 있는 반달 모양의 남이섬은 섬 전체가 호수 위 데이트 코스다. 잣나무, 메타세콰이어, 튤립나무, 은행나무 등 섬 곳곳의 숲길은 오붓한 산책길이자 은은한 빛깔의 멜로 로드. 그래서 연인과 함께 걷는 낙엽 명소 1번지로 꼽힌다.
남이섬 들머리는 잣나무 숲길이다. 400여㎙의 길을 따라 일직선으로 도열한 숲길은 짙푸른 이파리로 여전히 여름 내음을 내뿜는다. 이 섬의 가을본색은 남잣나무 숲길이 끝나고 십자로에 닿으면서부터 드러난다. 십자로 앞길로 길게 뻗은 은행나무 숲길은 때를 만난 듯 노랗게 익었다. 100여㎙의 이 숲길은 노란색 물감을 칠한 듯 한 폭의 수채화. 차마 밟아 더럽히기 아까울 정도로 순수한 원색의 절경이다. 영화 ‘겨울나그네’의 무대가 됐던 곳이다.
십자로 오른쪽은 메타세콰이어 숲길. 우람하게 하늘로 치솟은 메타세콰이어들로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이곳은 드라마 ‘겨울연가’로 더욱 유명세를 치루고 있다. 드라마가 중화권으로 방영된 후 한류 바람을 타고 중국 대만 홍콩의 젊은 연인들까지 날아오고 있다. 섬 중앙부 8만여평의 잔디밭. 밤나무 포플러 나무 등이 오붓하게 둘러싸고 있다.
연인과의 산책길에 반가운 훼방꾼들도 있다. 토끼, 타조, 청솔모 등의 동물들이다. 동물 우리가 따로 있지만 평소에는 모두 우리 밖으로 나와 뛰논다. 놀라지 말고, 동물들과 어울려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섬 전체를 돌거나 모터보터로 시원한 호수 바람을 맞는 것은 색다른 재미. 11월1일부터 한달동안 남이섬 내 안데르센홀에서는 남이섬의 사계를 담은 사진 전시회도 열린다.
여행정보
46번 국도를 따라가다 청평을 지나, 가평 못미처 경춘주유소 사거리에서 우회전한다. 2.5㎞ 가면 남이섬 선착장이 나온다. 입장료는 왕복 뱃삯 포함해 성인 5,000원, 어린이 2,500원. 선착장 앞 주차료는 4,000원이다.
모두 5곳의 식당과 카페가 있고, 2군데의 섬마트가 있다. 숯불갈비, 된장찌개 등 웬만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별장과 산장 등의 숙박도 가능하다. 남이섬 관리사무소(031-582-2181)
언제나 '한번은 가봐야지' 하면서도 발길이 닿지 않는 그곳, 춘천으로 향한다. 흑백사진의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경주와는 달리 춘천은 언제나 머릿속을 맴도는, 언제라도 갈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도시다. 서울에서 불과 2시간30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물리적 거리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번주는 춘천으로 간다. 요즘 경춘국도를 타기에 좋다. 하늘은 푸르고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한들거린다. 먼저 남이섬.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이지만 길은 경기도 가평으로 들어간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섬까지는 약 400곒. 5분이면 닿는다. 배는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과 데이트를 하러 온 젊은이들로 가득 찬다. 선착장에서 내려 오른쪽 길로 간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유모차를 밀며 갓난아기와 함께 산책을 즐기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정겹다.
왼편에는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텐트를 쳐놓고 도시락을 먹는 가족의 모습. 아이들은 가을 햇살 속을 무작정 내달린다. 숲길에서 타조를 만난다. 휘파람을 불면 성큼성큼 다가온다. 토끼•청솔모도 보인다. 이들은 그냥 남이섬을 돌아다닌다. 우리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겁내지 말고 먹이를 줘보자.
지지난해부터 남이섬은 변했다. 카바레가 불을 밝히고 트로트로 시끄럽던 남이섬이 아니다. 전봇대를 뽑고, 놀이공원 시설을 정리하고, 바가지 요금을 없앴다. 언제 이렇게 변했나 싶다.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나타났다. 보기에도 시원하다. 500곒 남짓. 너도 나도 기념사진 찍기에 바쁘다. 한쌍의 연인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익숙한 장면이다.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배용준과 최지우가 남이섬에서 자전거를 몰았었다. 남이섬에서는 누구나 배용준이고 최지우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끝나는 곳에 은행나무 길이 있다. 노란물이 들고 있다.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사진을 찍었던 연인들이 다시 사진을 찍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진을 부탁한다. 거절하는 이는 없다.
그렇게 남이섬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경강역에 들른다. 붉은 벽돌담과 푸른 기와가 예쁜 역이다. 영화 <편지>에서 주인공 박신양과 최진실이 만났던 곳이다.
춘천으로 가 소양예술농원에 묵는다. 이른 아침 소양호의 안개를 보기 위해서다. 소양예술농원은 소양호 선착장에서 모터보트로 3분 거리에 있다. 수영골 계곡에 있지만 배를 타고 가기 때문에 섬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최인규씨가 지난 80년부터 이 농원을 가꿨다.
저녁을 지어 먹고 농원 주위를 산책한 후 잠자리에 든다. 섬 아닌 섬에서의 하룻밤. 쉬 잠이 오지 않는다. 별이 쏟아질 듯 떠 있다. 귀뚜라미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아침이면 놀란다. 소양호에 안개가 자욱하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일교차가 심한 10월부터 소양호의 안개는 절정에 달한다. 소양호의 안개는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꿈틀꿈틀 살아 움직인다. 춘천은 1년에 250일 이상 안개가 피어 있어 '안개도시'라는 애칭이 붙었다. 안개가 걷힐 무렵의 풍경은 한편의 수묵화다.
돌아오는 길에 의암호에 들른다. 포근한 느낌을 주는 호수다. 잔잔한 물길을 따라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중도유원지가 섬처럼 떠 있고, 유원지에 자라는 훤칠한 활엽수가 가을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반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긴다. 춘천에서의 가을이 점점 깊어간다. 하룻밤 더 묵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귀띔] 자동차 남이섬에는 못 들어가
남이섬은 46번 국도를 따라 청평을 지나 가평읍 오거리에서 우회전해 약 1㎞를 가면 된다. 선착장 주차료 4,000원, 입장료는 뱃삯을 포함해 성인 5,000원, 어린이 2,500원이다. 섬에는 차를 가져갈 수 없다. 남이섬 가는 첫배는 오전 7시30분, 막배는 오후 9시30분에 뜬다. 20분 간격으로 있다. 남이섬 홈페이지(namisum.com)에서 정보를 꼼꼼히 챙겨가면 좋다.(031-582-5118)
경강역은 경강대교를 건너기 전 우회전해 강촌 리조트 방면으로 진입하면 된다.
소양예술농원에는 8평과 15평 등 모두 9개의 객실이 있다. 8평은 5인까지 묵을 수 있으며 8만원, 15평은 10인까지 숙박이 가능하며 15만원. 1인 초과시 5,000원이 추가된다. 주인이 소양호에서 직접 잡은 매운탕이 일품이다. 쏘가리와 잡고기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다. 4만원짜리 한 냄비면 4인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다. 욕실을 비롯해 식당•세미나실 등이 완비돼 있다. 소양호 선착장에 내려 전화하면 모터보트를 이용해 농원까지 안내한다.(033-242-4555•017-368-4556)
춘천의 먹을거리로는 막국수와 닭갈비가 유명하다. 소양댐 아래 윗샘밭에 있는 '명가 막국수'가 유명하다. 막국수 4,000원. 편육 7,000원. 춘천 시내 명동에 닭갈비집이 몰려 있다. 8,000∼1만2,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