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주자’ 는 사람도 있지만, ‘그려서 남주자’ 혹은, ‘한 우물만 파지 말자’ 는 사람도 있다.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오는 줄 알았으면 됐으니 얼른 다른 곳에서 온천도 파고 샘물도 찿고 황금 우물도 발견하라는 말이다.
‘사막의 공룡’ 으로 노마 콩쿠르 대상을 받은 그림책 작가이며, 철조망을 음표로 바꾸고 포크레인에 ‘긴 팔’, ‘센 팔’ 이라는 이름을 달아준 사업가이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세 귀 토끼로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
아이와 기차여행을 하는 좋은 아버지들을 만들어 냈고, 동양인으로 칸느 영화제 포스터도 그렸고, 떠오르는 온갖 재미있는 생각들을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우리 앞에 내놓는 사람. 어느 날 서울을 떠나 섬으로 들어가더니......문화의 사막에서 잠에서 깨어난 공룡은 그림같은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숲 속에 책상 하나 놓고 앉아 연필로 슥삭 그리는 대로 안데르센홀이 탄생하고, 재미난 연못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극장이 세워진다.
나라도, 나랏님도 모를 깜짝 놀랄 전시회를 섬으로 부르고, 우리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마법의 피리 소리에 이끌려 이곳까지 오게된다. 남한에서 가장 너른 마당을 가진 사람, 강우현의 남이섬으로.
거룻배를 타고 그 섬에 닿아 느릿 느릿 메타쉐콰이어길을 걷고 있는데 색종이 조각을 매단 나무들이 우수수 나뭇잎 비를 뿌리며 맞아 준다. 숲 사이 살 오른 토끼들이 웅얼거리고 타조가 눈 동그랗게 뜨고 한 사람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수를 세는 임무를 다하고 있다. 원더랜드에 들어 온 것이다.
여름 내내 안데르센이 머물렀었고, 지금은 고미 타로가 수채 물감 병들을 늘어놓고 작은 붓을 놀려 뽄도 없이 슥슥 삭삭 그리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재빨리 그리는지 책장을 넘기듯 펼쳐진 그림들을 보면서 가다 서다, 반짝이는, 재치 넘치는 아이콘들에 눈을 박고 있는 동안 어느새 말라버리니 말이다.
작가의 숨소리와 섬세한 손 놀림, 머뭇거림, 실수까지 찿아내며 즐거워 할 원화들은 육필 원고와 같다. 애인 앞에 선뜻 보여주기가 망설여지는 왜소한 몸처럼. 그러나 우리는 간지럼을 태워서라도 좀 더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저 또한 특별히 숨길 이유도 없고
비밀로 하고 있을 이유도 없기에 전시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어떠세요, 여러분 즐거우셨습니까? 라는 마음입니다......
하얀 버스가 달려 낯 익은 풍경, 낯 선 정류장에 서고, 누구나 다르게 생긴 똥을 누고 (혹이 하나인 낙타는 하나의 혹, 혹이 둘인 낙타는 두 개의 혹 모양의), 잠에 빠진 고래는 큰 배가 다가와도 여자 친구가 사랑을 속삭여도 잠수함이 배를 간질어도 비행기가 떨어져 제 등 위에서 사람을 건져 올려도 세찬 파도가 뒤집어 놓아도 깨지 않더니 섬에 머리를 부딪고야 희미하게 눈을 뜨고 ‘어쩐지 가지가지 꿈을 꾼 것 같아’ 라고 말한다.
귀엽게 생긴 잿빛 헬리콥터가 분홍빛 헬리콥터를 만나 세상을 여행하며 사랑의 비행을 하다, 교회의 십자가 위, 따스한 햇살 받으며 수 많은 아기들을 낳는 장면에선 웃음이 터진다. 저 방사는 산호초의 세계에서 본 장면 아닌가? 고정 관념으로 딱딱한 뇌가 물렁해지기 시작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학교에 가기 위해 줄을 잘 섰고, 지각하면 혼 났고, 선생님이 시키는 운동, 청소도 열심히 했으며,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노력했고, 어른들이 별 말이 없어 불안했고, 양심 바르게 살아야 했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의 ‘옛날의 어린이’ 는 어릴적 그림같아 다정하고 푸근하다.
꽃을 따느라 아기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캥거루에게 꼬마가 아기 캥거루를 데려다 주는데, ‘떨어뜨린 것, 잃어버린 것 주의’ 라고 써 있다. 처음 보는 포스터 그림책이다.
기합을 넣자. 침착해지자. 귀찮게 하지 마. 남의 말을 열심히 듣자. 뼈까지 다 먹자. 만약 길을 잃으면 고래고래 울어요. 물구나무 서자. 멋 부리자. 낮잠을 자자. 눈사람을 만들자. 기도를 하자...... 기 죽이고 억압하는 문귀 투성이의 늘 보는 포스터 구호 대신, 이런 말들이 기발한 그림과 함께 거리에 나붙는다면 미소를 잃어버리진 않을 텐데......
검 보랏빛 왕 뱀 한 마리가 작가의 커다란 붓 끝에서 빠져 나와 하얀 종이 위에 농염하게 누워 있다. 푸른 눈 치켜 뜨고 빨간 혀를 날름대며 뭐라고 중얼거린다. ‘나도 뭐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니지만 당신도 만만치 않군.’
300여권의 독특한 저작물을 낸 고미 타로도 多우물파다. 그림책, 문구, 복장 디자인, 만화 비디오 제작, 수필, 강연, 사진등 다양한 일을 하고있다. 작품들을 따라 먼 여행을 온 캐릭터 상품은, 달력, 드로잉 북, 가방, 수건, 접시, 공책, 스티커...... 누구나 갖고 싶어하게 생겼다.
아이디어 가득한 한 사람이 곧 걸어다니는 기업인 셈이다.
섬을 나오려는 데 갑자기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깔개를 펼쳐 머리에 쓰니 서로 그 속에 들어가려고 아우성이다. 이윽고 배가 와 우르르 달려 나갔다. 수를 세는 사람이 있어 자세히 보니, 한 사람도 놓치지 않겠다는 저 동그란 눈의 타조였다. 어디서 왔어요? 누군가가 물었다. 어디서 왔을까. 우린 방금 원더랜드를 막 빠져나왔을 뿐이다.
“와아 __ “
“저길 봐 ! ”
함성이 터져나와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돌아보았다.
물에서 태어난 투명한 수채 빛기둥, 무지개였다.
마치 남이섬의 하늘에 걸린 고미 타로의 포스터 그림 같았다.
제목은,
‘환호성을 지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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