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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탑들이 모여있는 곳 - 경주의 탑

한국의 탑은 전국 각지에서 볼 수 있지만, 특히 역사 깊은 유적지인 경주에서 그 모습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탑을 보면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법. 경주에 있는 유명한 탑들은 꼭 보아두어야 할 진품이다.
감은사지 3층석탑

감은사 본래의 이름은 진국사였다. 아들 신문왕이 부왕의 호국충정과 함께 나라를 사랑하는 참뜻에 감사하여 절의 이름을 바꾸어 감은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금당의 섬돌 아래에는 동쪽으로 굴을 파서 해룡이 직접 이 절로 들어와 선회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또 삼국시대의 탑은 대체로 일탑식 가람제도를 따라 단탑가람을 형성하였지만 통일 이후 등장되는 쌍탑식 가람 제도의 초기 양식을 적용한 것이 이 곳 감은사의 쌍탑이다.
감은사지 동서 3층석탑은 그 규모에 있어서 뿐 아니라 발견된 석탑의 사리 장엄구에 있어서도 단연 통일기의 석탑 미술품을 대표할 만한 수작이다.

용장사지 3층석탑

보물 제 186호. 용장사지 동편 능선 위에 자리하여 이 계곡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 탑은 현재 3층 옥개석까지 남아 있는데 높이가 4.5 m이다.
높이 200m 가량 되는 산의 바위를 하층 기단으로 삼은 점이 신라인의 자연과의 조화 방법을 잘 나타내 준다.
아마도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에 탑을 세운듯 하다. 직접 바위에 6cm 정도 되는 괴임을 2단으로 마련하고, 기단의 한 면은 1석으로 나머지 3면은 2매의 석재로 결구시켰다.
탱주가 1주이다. 위에는 옥신괴암이 2단 마련되었고 2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으며, 갑석정연이 있다. 옥신과 옥개석은 각각 1매의 석재로 되어 있고, 2층 옥신은 1층에 비해 체감 효과를 크게 주어 전체적인 안정감을 꾀했다.

옥개받침은 모두 4단으로 되어있고 옥개석의 상면에는 옥신괴임이 2단 씩 마련되어 있다. 삼륜부는 모두 유실되어 없고 삼층 옥개석 가운데에 찰주를 세웠던 구멍이 남아 있다.
이 탑은 1922년에 도괴되었던 것을 복원하였는데 2층 옥신 상부에 방형사리공이 있었다 한다.
신라 하대인 9세기 이후 작품으로 보아진다.

정항리 사지석탑

본래 금당을 사이에 두고 동서 쌍탑을 이루고 있던 것이나 지금은 서탑 바로 옆에 동탑이 놓여져 있다. 서탑은 일제 시대에 보수되어 현위치에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2층기단 위에 5층 탑신부를 건립하고 상륜부를 형성하였다. 우선 상하 이중의 기단부는 널찍하여 안정감이 있다.
하층기단은 양쪽 우주에 탱주 2개를 조각하였고, 갑석 상면에 높직한 원호 와 얕은 괴임을 마련하여 삼층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 기단 면석에도 우주와 탱주가 각기 둘씩 조각되었다. 갑석은 아래쪽의 부연이 정연한데 상면에 높직한 각 혈 괴임 2단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 하나씩으로 조성되었다. 1층 몸돌과 2층이상 몸돌의 체감률은 심한 편이나 2층이상에서는 거의 없을 정도이다.
1층 몸돌 양우주 가운데에는 문 모양의 조각이 있고 그 좌우에 인왕상이 조각되었다.

2층 이상의 몸돌에는 양쪽 우주만이 조각되었을 뿐이다.
벗은 상체에 무릎위까지 오는 짧은 군의를 입은 인왕상은 어깨가 떡 벌어지고 몸을 버티고 있는 두 다리의 근육은 당당하면서도 활기찬 형태를 취하고 있다.
부라린 눈과 큼직한 코, 듬직한 입, 강인한 턱과 불거진 광대뼈 등 조각이 매우 빼어난 인왕상이다.
지붕돌 층급받침은 각 층 5단씩이고 낙수면 꼭대기의 몸돌 괴임대는 각 형 2단이 정연하다.

낙수면은 평박하고 네 귀퉁이의 전각이 뚜렷하여 경쾌하다. 상륜부는 노반석만 남아 있다.
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석탑들의 각 부분이 여러 개의 석재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이 석탑은 몸돌과 지붕 돌들이 각각 한 몸으로 되어 있어 8세기 중엽 이후 석탑의 전형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탑의 기단부는 완전히 없어지고 탑신부는 몸돌의 1층만이 남아 있는데 그 위에 5층까지의 지붕 돌만을 쌓아놓았다.
1층 몸돌의 규모나 표면조각으로 보아 동탑도 서탑과 같은 형태와 규모의 석탑이었으리라 짐작된다

황룡사지 9층목탑

황룡사의 9층 목탑은 선덕여왕 14년(645년)에 건립된 신라 삼보 중 하나이다.
이 탑은 선덕여왕이 삼국통일을 기원하는 신라인의 결의를 다지는 정신적 구심체로 김용춘 등 군신들과 백성들의 열화같은 호응을 받아 건립하였는데 대장 아버지가 장인 200여명과 함께 3년 여의 각고분투 끝에 완성하였다.

이 탑은 45m 정방형의 기단위에 전체 높이 약 70m에 이르는 한국 건축 기술의 경이로운 수준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건물이었다.
이 탑은 593년간을 이어 내려오다가 고려 고종 25년(1238년) 겨울 몽고 침략군에 의해 불타버리고 말았으나 그 기단과 주춧돌은 남아 있다.

분황사 모전석탑

이 석탑은 전돌 모양으로 다듬은 돌로 쌓아서 전탑을 모방하였으므로 모전석탑이라고 부른다.
탑이 세워진 시기는 분황사 창건때인 신라 선덕 여왕 3년(634년)으로 보고 있다. 현재 3층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의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915년 조선 총독부에서 수리할 때 2층과 3층 사이에 들어 있던 사리함을 꺼냈는데 함안에서 각종 옥류, 가위, 은바늘 및 숭녕통보, 상평오수 등 고려시대의 중국 주화가 발견되었다. 이 화폐로 보아 고려시대에서도 탑을 해체하고 수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기단은 높고 넓으며 4각형인데, 1층 탑신 4면 가운데 감실을 파고 문을 달았다.
문틀은 화강암 석재로 만들었는데, 문설주에는 입체 조각에 가깝게 도드라진 인왕상을 새겼다.
이 인왕상은 힘차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신라불교 조각 가운데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정혜사지 13층석탑

<통지(通志)>에 의하면 정혜사(淨惠寺)의 유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신라 선덕왕(善德王) 1년(780년)에 당나라 첨의사(僉議 寺) 백우경(白宇經)이 난을 피하여 자옥산(紫 玉山) 아래에 영월당(迎月堂)과 만세암(萬歲庵)을 세우니 왕이 친히 그 곳에 나아가 암을 정혜사라 고치고 당을 경춘(景春)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것으로 보아 사찰의 창건은 신라시대에 있었을 것은 의심할 수 없으나 폐사시기(廢寺時期) 또한 16세기로 보기도 하지만 당시의 사관(寺觀)은 알 수 없다.
석탑(石塔)의 현상으로 보아 창건 (創建) 당시에는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지녔을 것으로 짐작되며, 현재는 특이한 형태의 십삼층 석탑(十三層石塔) 한기가 남아 있다.

정혜사지 13층 석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신라시대 탑으로는 유일하게 13층으로 조성돼 있으며 1층 탑신과 옥개가 큰데 비해 2층부터 13층까지의 탑신과 옥개가 파격 적으로 적게 조감되었다.
또한 네 귀에 방형의 돌기둥으로 우주를 세우고 우주안에 보조돌기둥과 안방 하방 등을 놓는 등 독특한 양식으로 통일신라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마동 3층석탑

화강암석으로 만든 통일신라시대 중기의 3층 석탑으로 현재 상륜부에는 노반만 남아 있고 높이는 5.4m이다.
기단은 2겹으로 쌓되 아랫 기단의 갑돌 및 가운데 돌은 각각 8매의 돌을 짜 맞추어 만들었다.
윗 기단의 갑돌과 가운데 돌은 각각 4매의 돌을 조립하여 만들었으며, 위·아래층의 가운데 돌에는 면마다 중간 기둥 2개, 모서리 기둥 2개씩 을 정연하게 새겨 놓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석굴암을 조성한 김대성과 인연이 있다고 한다. 즉 김대성이 무술을 닦을때 큰곰을 잡아 운반하다가 날이 저물어 곰이 덤벼들면서 절을 지어 주지 않으면 해치겠다고 하기에 이곳 마동에 절을 짓고 몽성사라고 하였다가 뒤에 장수사라는 사찰과 관계있는 것으로 여 겨지고 있다.

석가탑과 다보탑

다보탑은 눈에 보이는 물질의 아름다움이요, 석가탑은 마음에 비치는 정신세계의 아름다움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신비한 탑이다.
법당 안에 있는 부처님과 정삼각형을 이룬 위치에 자리 잡고 하늘과 땅이 하나로 통합된 가운데 석가여래의 설법은 다보여래의 증명에 의해서 영원히 불국에 다함이 없다.
불국사의 다보, 석가 두 탑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다.
탑은 부처님의 육신이 담긴 무덤은 아니더라도 부처님의 정신이 담긴 부처님의 몸이라고 생각되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이런 의미에서 다보탑은 다보여래(多寶如來)라는 부처님이며 석가탑은 석가여래(釋迦如來)라는 부처님의 두 분의 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법화경(法華經) 이야기
법화경에 견보탑품(見寶塔品)이라는 장이 있는데 바로 이 견보탑품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세워진 것이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다보여래는 석가여래 이전에 나신 부처님으로 영원히 살아 계시는 본체로서 부처님, 즉 법신의 부처님으로 그는 옛날 동방의 먼 곳 <깨끗한 보배>라는 나라에서 태어나셨는데, 아직 부처가 되기 전 보살로서 수도를 하고 있을 때에 이러한 서원(誓願)을 발했었다.

“내가 부처가 되어 죽은 뒤에 어디에서든지 누가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으면 그 앞에 탑 모양으로 땅에서 솟아나 참말로 잘하는 일이다 하고 증명을 하리라……”

이 보살이 부처가 되어 다보여래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속세를 버리게 될 즈음 그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말하길 “내가 죽은 뒤에 너희가 내 몸을 향해 공양하고 싶거든 큰 탑을 세워라.” 라고 하였다.
석가여래가 법화경의 진리를 말씀하시는 마당에 바로 그 앞에 칠보(七寶)로 된 장엄한 탑이 땅 위에 솟아 있었다. 바로 이것이 다보여래의 탑인 다보탑(多寶塔)인 것이다.

두 탑이 간직한 깊은 뜻
불국사의 두 탑은 위의 이야기를 그대로 형상화하여 조형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다보탑은 다보 여래의 탑이란 뜻이고, 그것을 칠보탑이라고도 했다. 칠보란 금, 은 등 일곱가지 보석류를 말하는데 주석가들은 칠보를 부처의 본질인 깨달음의 일곱가지 덕성으로 말한다.
다보탑에는 많은 공간에 있는데 經에서 말하기를 사면에 향기를 자욱히 뿜는다고 하였다. 이것을 받아 주석가들은 사제의 도풍이 사덕의 향을 불어대는 것이라고 한다.
법화경에는 법신인 다보여래가 석가여래께서 진리를 설하는 것을 보고 찬양한 후 다보탑 안의 다보여래의 자리를 반쪽 비워 같이 나란히 있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200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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