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환율
 
 주가
 
 건강
 
 게임

2020년 08월 14일 (금) 
 
구분 기사 리스팅  
 
英語 English | 日本語 Japanese  
지역 검색  
소개 | 둘러보기
지역축제 | 테마여행 | 유용한정보
 
숙박시설
 
More  

앤게스트하우스
외국 배낭여행객 및 내국인을 위한 숙...

진(眞)게스트하우스
진(眞)게스트하우스(Jin Guesthouse)는...

불정역 테마펜션열차
경북선 철도중 가장 오지선로인 문경시...
 호텔전통숙박시설여관게스트하우스유스호스텔펜션홈스테이/민박 ...
 
음식점
 
More  

통선재
이순신 장군의 소박함과 백성을 아끼는...

올림피아호텔 뷔페식당 구르망
복탕, 해삼탕과 같은 건강식을 비롯하...

은하수 (세종호텔 한식 부페)
국내 최초로 한식을 뷔페화한 곳으로 ...
 한식양식 (American)일식중식프랑스씨푸드뷔페베지테리안이탈리아 ...
 
주점·카페바·커피숍
 
More  

해피홀리
바다와 접해있어 전망이 좋은 카페로 ...

나무 (족욕 와인바)
오전에는 일반 카페로 운영하다가 오후...

캐슬 프라하 (Castle Praha)
유럽풍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
 이벤트 카페카페, 바커피전문점민속주점라이브클럽디스코테크스카이라운지 ...
 
쇼핑
 
More  

파라다이스면세점 (부산)
1983년 부산 최초의 면세점으로 오픈한...

파라다이스면세점 (대구)
대구국제공항 내에 자리잡은 면세점으...

제천 산삼 경매장
전국산삼감정협회가 전국에서 두 번째...
 백화점면세점대형할인상가전문 상점명품 수입브랜드재래시장경매장 ...
 
엔터테인먼트
 
More  

삼락습지생태원
여름이면 물에 잠겨 애물단지 취급을 ...

대명함상공원
수도권 최초의 함상공원으로 경기도 김...

강릉 주문진항~하조대 왕복 유람선, 이사부크루즈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항과 양양 휴휴암...
 카지노동물원전망대유람선골프수족관댄스 ...
 
공연·전시·이벤트
 
More  

서울 남산국악당
서울특별시가 전통 국악의 우수성을 널...

채플린홀 (코미디 상설 공연장)
채플린 엔터테인먼트와 씨네코아가 마...

채플린홀 (코미디 상설 공연장)
채플린 엔터테인먼트와 씨네코아가 마...
 전시장연극공연장공연장, 이벤트홀전통공연장미술관, 갤러리영화관 ...
 
미용·건강
 
More  

옥시바 (Oxy Bar) (산소방)
아로마테라피 산소바인 옥시바(Oxy Ba...

아로마테라피 옥시바 (산소방)
산소농축기에서 만들어진 고농도 산소...

명상아루이 선(仙)
전통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서울...
 맛사지사우나스킨케어, 미용스포츠센터성형클리닉건강 수련웨딩샵 ...
 
스포츠
 
More  

한국폴로컨트리클럽 폴로경기장
한국폴로컨트리클럽이 제주시 구좌읍 ...

서울월드컵경기장 풋살구장
2008년 6월1일에 개장하여 운영을 시작...

한국산업기술대 실외 인공암장과 볼더링암벽
경기도 시화공단에 자리잡은 한국산업...
 탁구프로야구축구태권도프로농구사격수영 ...
 
   What's On Korea > 전통 문화 >  

 고인쇄 고지도 농기구 단청
 도자기 매듭 문방사우 부채
 분재 불상 색지공예 서예
 소반 솟대 수석 
 옹기 유기 자수 장승
 전각 전통 악기  죽공예
 짚풀문화   토우
 한복 한옥 한지 회화
푸른 녹에 절절이 배인 추억 - 유기

자주 닦지 않으면 푸르스름한 녹이 배어나오는 유기. 집안에 제사가 있거나 큰 손님이 올라치면 어머니는 놋그릇을 꺼내어 볏짚으로 정성스럽게 닦곤 했다. 노르스름한 빛깔의 유기에서는 항상 특유의 냄새가 났다. 한국의 냄새, 고향의 냄새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유기란?

유기는 구리에 아연을 섞어서 만든 합금인 황동으로 만든 그릇류를 말하며 순수한 한국말로는 놋그릇이라 한다. 유기는 고려 공민왕 시대부터 시작하였으며, 고려말엽부터 일반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유기사용을 권장하여 중기 이후에는 일반화되었다.
그 종류로는 식기, 제기, 대야, 요강 등 생활용품과 징, 꽹과리 등 풍물용 악기에 이르기까지 고루 쓰였으며 특히 겨울철에는 놋그릇을 사용하는 관습이 있었다.

얼굴 표정까지 고스란히 비치는 영롱한 표면, 급조된 일회용 생활용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묵직한 중량감. 게다가 보온 효과까지 뛰어나 선조들의 필수적인 부엌 살림으로 애용됬던 것이 바로 이 놋그릇이다.
시원한 사기 반상기(飯床器, 밥상 하나를 차리는 한 벌의 그릇)가 여름철 밥상을 장식했다면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 무렵부터 겨울철 밥상의 주연은 단연 노르스름한 광채가 일품인 유기 반상기였다.

생활 속의 유기

상 위에 놋그릇이 오르는 것은 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요, 추운 겨울에 밥을 더욱 따뜻하게 먹는 지혜가 배어 있는 생활 방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추석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나무 궤 속에 깊이 간수해 두었던 놋그릇들을 꺼내 나무를 태운 재나 기와를 빻아 낸 가루를 물에 타서 헝겊이나 지푸라기에 적셔 가지고 닦는 것이 연례 행사였다.
아낙네들이 토방에 자리를 깔고 놋그릇을 궁글리며 닦아 거울처럼 반짝이게 윤을 내던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푸근해졌던 기억을 아련히 간직하고 있는 이는 아직도 많을 것이다.

유기 중에서도 제기(祭器)나 반상기(飯床器)는 우리 생활에 폭 넓게 쓰여졌는데, 예법과 범절을 중시하던 우리네 제사의례와 식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의식문화(儀式文化)의 정수였다. 특히 제사나 어른을 모시고 있던 아낙네들에겐 제기와 반상기를 쓰고 간수하는 정성이 바로 효도와 공양을 가늠하는 척도였기 때문에 유기는 아주 정성스레 다루어졌다.

그러나 그 많은 제기와 첩첩 반상기를 녹나지 않게, 항상 윤이 나게 닦아 부리고 간수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 시절, 여인네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는 짐작코도 남을 일이다.

구리(銅)를 주재료로, 섞는 성분에 따라 청동(구리+주석), 황동(구리+아연), 백동(구리+니켈) 등 다양한 합금이 가능했던 유기의 쓰임새는 그릇, 수저 등 식기류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대야, 요강, 담배함, 촛대 일반 생활용품에서 연적, 서진(書鎭) 따위 문방구, 제사 때 쓰는 제기(祭器), 절에서 필요한 불구(佛具)와 징, 꽹과리, 나팔, 편종 등 악기까지 유기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유득공(柳得恭)이 쓴 『경도잡지(京都雜誌) 』에는 "통속적으로 놋그릇을 중요시하여 사람들은 반드시 밥, 국, 나물, 고기까지 일체의 음식을 담는 용기로 놋그릇을 사용한다. 심지어 요강, 세숫대야까지 놋쇠로 만든다" 고 기록돼 있을 만큼 그 옛날, 유기의 인기는 대중적이었다.

그 흔하던 놋그릇이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은 잘 알려진 대로 일제가 무기를 만들기 위해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가정의 놋그릇을 수탈해 갔기 때문이었다. 해방 뒤 놋그릇은 다시 살아났지만 이미 옛 전통을 되살려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한국전쟁 이후 연탄이 사용되면서 연탄 가스에 변질되기 쉬운 성질 때문에 아예 사라져 갔다. 오늘날에는 놋그릇이 생활 용기로서가 아니라 전통 민예품의 하나로서 겨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유기의 제작

놋그릇은 놋쇠의 재료와 만드는 공정에 따라 질에 큰 차이가 생긴다. 가장 좋은 재료로 치는 것은 구리 한근에다 주석 넉량닷돈의 비율로 섞어 만드는 것이다.

놋그릇을 만드는 방법은 ‘주물 제작법’과 ‘방짜 제작법’이 있다. 주물 제작법이란 거푸집을 만들어 거기다가 놋쇠를 녹여 부어 그릇의 형태를 만든 뒤에 거친 면만 고르게 깎아내고 윤을 내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그만큼 격이 낮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방짜 제작법은 열한명의 사람이 한조가 되어 순전히 사람 손으로만 만들어내는 것이다. 구리와 주석 합금한 쇳물을 녹여 바대기라 불리는 둥글넙적한 쇳덩이를 만들고 그것을 불에 달구어가면서 두들기는 과정을 수없이 되풀이해 그릇의 모양을 만들어간다.
방짜는 구리와 주석 외에 다른 물질이 들어가면 두들겨 모양을 만드는 과정에서 깨어지기 때문에 안 되는데다가 손품이 워낙 많이 들어가는 것이었으므로 당연히 최상품의 놋그릇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런 조상 전래의 방짜 그릇 만드는 법은 너무나 품이 많이 들었으므로 그 당시에도 아주 드물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늘날 흔히 방짜라고 알려진 것도 우선 그릇 모양 비슷하게 주조해서 이것을 다시 불에 달구어 두들기고 궁글려 단단하게 만든 것들이다. 드물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후기의 방짜 그릇들 역시 대개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놋그릇이지만, 그래서 다시 되살려 쓸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사라져 가는 놋그릇과 함께 한국민의 고유한 정신 역시 뿌리없이 떠돌게 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놋점 거리로 불리는 유기마을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유기만을 고집하고 있는 마을이 있다. 바로 '백두 대간' 경북 봉화 신흥리.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곳에서는 한평생을 유기와...
딱 맞는 '안성맞춤' - 안성유기
그 옛날,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유기. 수많은 유기 중 최상품은 단연 경기도 안성에서 생산된 '맞춤유기'였다. 딱 들어맞는 물건을 비유하는 '안성맞춤...
회사소개 | 왓스언 뉴스 | 저작권 안내 | 광고·제휴 문의 | 채용 정보 | 사이트맵
Copyright ⓒ 2001 What's On Communications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