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라도 좋다. 아니라도 좋다.
몇해 전 어느 자동차 CF카피. 길 안과 길 밖의 경계가 분명하던 시절. 그러나 이제 그 경계는 무너지고 그 자리에는 원시의 들꽃들만 무성하다.
그 원시의 그리움을 즐기는 사람들, 오프로드(Off Road)매니아들, 그들에게는 길의 경계는 없다.
"오직 태초를 찾아 떠나는 멀고 먼 여정만이 있을 뿐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퀴 튼튼한 지프(4 Wheel Drive)와 역경을 함께 나눌 동료들, 그리고 혹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모험정신과 개척정신일 뿐이죠."
오프로드는 흔히 두 가지로 나눈다. 승용차를 포함한 일반 자동차로 비포장도로에서 경주를 하는 것이 그 중 하나고, 지프 등 4륜 전문자동차를 이용해 비포장의 미개척지를 여행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이태열씨는 후자를 즐기는 매니아. 겉으로 보기에는 순한 양처럼 수더분해 보이기만 하는 이태열씨. 그러나 길에 오르면 그는 어느 누구보다 모험정신과 개척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나이가 된다.
길이, 아직 사람들의 손에 의해 다듬어지지 않은 길 밖의 길이 그에게 거친 손길을 보내기 때문이다. 길은 거칠고 험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 길 위에는 전설이 되어버린 그리움이 바람으로 불고 길 끝에 이르면 거기 전설은 하늘이 되어 그를 맞이한다.
"지프는 원래 2차대전 당시 독일군에 대항해 만든 미군의 작품이었죠. 저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디든 누비고 다녀야 했던 지프가 요즘에 와서 승용개념이 되고 있는거죠. 오프로드는 바로 그 지프의 본성을 살리는 겁니다."
오프로드의 매력은 그 곳에 있다. 문명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
자연의 길을 달리다
속도 무제한의 아우토반이 제임스 딘 같은 속도곽들에게 최고의 길이라면 이태열씨에게 최고의 길은 1m가 넘는 바위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계곡을 따라 휘몰아치는 급류도 가끔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그런 곳에서라야 자연과 조우하며 거친 숨결을 토해 놓는 지프 본연의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그대로 운전대를 잡는 손에 전달된다. 어느 바위에 뒤집힐지도 모르고 어느 계곡에 휩쓸릴지도 모르는 절대절명의 위기는 오히려 살아있다는 희망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그것은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프로드의 진실
오프로드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이는 이태열씨지만, 또 오프로드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는 그. 오프로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과 정부의 정책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오프로드 동호회만 크고 작은 것을 합해 50여 개에 이르는데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오프로드를 사치성 놀이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국산 중고 지프를 오프로드 카에 맞게 튜닝을 다 한다고 해도 5~600만원, 비싼 경우가 7~800만원이면 족하다.
평상시에는 일반 자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오프로드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튜닝을 불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 법규 때문이다.
그런 잘못된 인식과 규제들이 오프로드를 즐기는 이태열씨에게는 길 앞을 가로막는 바위보다 더 커다란 장애물이다. 그러나 그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 또한 그가 넘어야할 장애물일 뿐.
"하고 싶은 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딱 한 번만 함께 길에 오르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오프로드의 매력은 그 한 번이면 족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길에 들고 싶어서 오히려 먼저 안달일테니까요."
짙은 먼지로 도시의 자욱한 아침, 단속 때문에 차는 집에 두고 이태열씨는 회사로 향한다. 그러나 그는 야성을 느끼며 솔내음 가득한 거친 숲길을 달리고 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의 길이 언제나 그에게 손짓하기 때문이다. 그는 매니아다.
